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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중립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원자재, 구조, 환경

by forest-pixie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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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 콘웨이 작가의 물질의 세계 책 표지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Material World)』는 인류가 사용하는 ‘물질’이 단순한 자원을 넘어 문명과 시스템, 권력의 축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를 해부하는 교양서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주거 공간, 교통수단 속에는 보이지 않는 자원 구조의 역사와 착취, 기술과 지정학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탄소 중립이 글로벌 아젠다가 된 시대에, 이 책은 “친환경 산업조차 자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시선을 제시합니다. 구리, 리튬, 철, 모래, 석유, 암모니아 같은 물질들이 지속가능한 미래의 필수 전제이자, 동시에 커다란 딜레마로 등장합니다. 『물질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 물질 위에 세워져 있고, 그것이 어떤 갈등과 대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원자재 – 미래 기술은 원시 자원에 기대고 있다

탄소 중립 시대는 기술의 시대이자 동시에 자원의 시대입니다. 전기차,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은 분명 친환경 기술이지만, 이 기술을 움직이는 핵심은 여전히 ‘원자재’입니다. 『물질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친환경’이라는 이미지 뒤에 채굴, 정제, 공급망, 지정학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 니켈, 코발트는 남미, 아프리카, 중국 같은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으며, 공급망은 매우 불균형하고 불안정합니다.

에드 콘웨이는 자원을 “보이지 않는 인프라”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곧 어떤 기술도 자원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탄소중립 기술일수록 더 많은 금속 자원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컨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전기차가 두 배 이상의 구리를 사용하며, 태양광 패널 1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 종류의 원소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희귀한 자원 조합은 자원의 ‘탈탄소화’ 자체가 또 다른 탄소 소비를 전제로 한다는 아이러니를 낳습니다.

『물질의 세계』는 이 점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단지 기술의 발전이 아닌 자원 접근권과 글로벌 공급망 설계가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기술이 미래를 여는 열쇠라면, 자원은 그 열쇠를 만들 재료인 셈입니다.

구조 – 세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재료들

콘크리트, 강철, 유리, 플라스틱. 우리는 이 네 가지 재료 없이는 건물도 도시도 만들 수 없습니다. 에드 콘웨이는 이를 “보이지 않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실체”라 부릅니다. 특히 철과 모래, 즉 철근과 시멘트는 현대 문명을 수직적으로 확장시킨 두 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재료들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환경적 비용이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물질의 세계』는 철광석이 어떻게 가공되어 도시를 세우는지, 모래가 어떻게 ‘신흥 자원 분쟁’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실제로 세계 모래의 약 70%가 건설용 콘크리트에 사용되며, 일부 국가는 모래 부족으로 불법 채굴과 밀수를 겪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또한 강철 생산 과정은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며,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8%가 철강 산업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도시 인프라, 공공시설, 가정용품까지도 모두 자원 구조의 결정체입니다. 콘웨이는 기술적 대안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구조 자체를 인식하고 재설계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즉, 진짜 전환은 에너지 효율화나 대체 소재 개발을 넘어, 도시를 구성하는 방식, 건축의 철학, 생산-소비 시스템 전반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환경 – 친환경 기술은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우리는 ‘친환경’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에드 콘웨이는 이를 무비판적인 환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전기차, 재생에너지, 탄소 포집 기술이 친환경적이라는 전제를 되묻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기술들이 작동하려면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이 먼저 들어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오염과 착취’가 계속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수천 톤의 금속, 콘크리트, 유리가 필요하고, 이를 가공하기 위해 또다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가 사용됩니다. 즉, 친환경으로 가는 길이 꼭 친환경적이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또한 자원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파괴, 현지 주민의 이주, 생태계 교란 등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와 충돌하게 됩니다.

『물질의 세계』는 기술 낙관주의에 경고를 보냅니다.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어떻게 추출하고 분배하며 사용하는지에 대한 윤리적·정치적 성찰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자원에 대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우리가 사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속 가능성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는 기술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류 문명의 물리적 기반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지, 그 재료들이 어디서 오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냉정히 보여주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진짜 질문들을 던집니다. 탄소 중립 시대의 핵심은 단지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이 아니라, 그 구조를 구성하는 자원과 시스템 전반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재구성에 있습니다. 기술이 아닌 자원, 이상이 아닌 구조에서 시작되는 전환. 『물질의 세계』는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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